오더북 공유 기대감에 상장 신청 몰려…'현실화' 가능성은 낮아 고팍스 인수 가격, 협상 초기보다 대폭 낮아져…기업 가치는 3분의1로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와 국내 거래소 고팍스 간 인수 협상이 막바지에 도달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고팍스에 상장 신청을 하는 프로젝트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모양새다. 고팍스에 상장될 경우 바이낸스에도 상장되기 쉬울 것이란 기대감에서다.
◇오더북 공유 가능성 낮은데…'밑져야 본전' 상장 신청
24일 복수의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바이낸스의 고팍스 인수가 임박하면서 최근 국내 가상자산 프로젝트 중 고팍스 상장 신청을 검토하는 곳이 크게 늘었다. 그동안 점유율이 큰 대형 거래소 위주로 상장 신청이 몰렸다면, 최근에는 고팍스가 신규 상장처로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다.
사안에 정통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바이낸스와의 인수 협상은 정말 세부 절차만 남았다"며 "이런 소식이 업계에 공공연하게 퍼지면서 최근 고팍스로 상장 신청이 부쩍 몰리고 있다. 규제상 오더북 공유가 허용될 확률은 낮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상장 신청을 하는 곳들이 많을 것"이라고 전했다.
상장을 원하는 프로젝트들이 바라는 것은 바이낸스와의 오더북(거래장부) 공유다. 오더북 공유가 가능해지면 바이낸스에 상장된 코인들도 고팍스에서 거래될 수 있고, 고팍스에 상장된 코인들도 바이낸스에서 거래될 수 있다.
더욱이 최근 업비트, 빗썸 등 국내 거래소들은 '테라 사태', '위믹스 사태' 등을 거치며 국내 가상자산 프로젝트의 상장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그러나 바이낸스에 상장될 경우 굳이 국내 대형 거래소를 노릴 이유가 없다. 바이낸스 상장을 위한 통로로 고팍스를 활용하겠다는 게 가상자산 프로젝트들의 전략이다.
하지만 국내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은 제한적인 경우에 한해서만 오더북 공유를 허용하고 있다.
특금법에 따르면 △다른 가상자산사업자(오더북 공유 대상 거래소)가 국내 또는 해외에서 인·허가등을 거쳐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이행하는 사업자일 것 △가상자산사업자는 자신의 고객과 거래를 한 다른 가상자산사업자의 고객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을 것 등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오더북 공유가 가능하다.
바이낸스는 여러 국가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만큼, 바이낸스가 해외에서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이행하는 사업자인지 판단하는 데는 이견이 상당할 전망이다.
또 바이낸스와 고팍스가 서로 고객 실명인증(KYC) 정보를 완전히 공유해야 오더북 공유가 가능하다. 고팍스보다 바이낸스의 회원 수가 훨씬 더 많은데다, 바이낸스의 회원들은 전 세계에 걸쳐 있어 KYC 정보를 공유하는 데도 적잖은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고팍스가 바이낸스와 오더북 공유를 할 가능성은 낮을 것이란 분석이다.
◇고파이 묶인 돈, 예상보다 많을 듯…고팍스 기업가치는 '3분의 1'
한편 바이낸스와 고팍스 간 협상은 일부 소액주주와의 협의를 놓고 결론을 짓지 못하고 있다. 바이낸스는 이준행 고팍스 대표 지분뿐만 아니라 1% 이상 지분을 보유한 일부 주주들의 지분까지 합해 51%가량을 인수하고자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준행 대표 지분은 2021년 말 기준 41.2%로 드러났으나, 지난해 시리즈B 투자를 유치하며 일부 희석돼 40% 내외일 것으로 추정된다.
인수 가격은 협상 초기 때보다 대폭 낮아졌다. FTX 사태를 거치며 가상자산 시장의 분위기가 냉랭해진데다, 고팍스의 예치 서비스 ‘고파이’의 출금 지연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바이낸스는 고팍스가 고객에게 내주지 못한 고파이 예치금 및 이자를 합산한 금액으로 인수대금을 치를 예정이다.
고파이에 묶인 고객 예치금 및 이자는 약 320억원이다. 다만 이는 만기일이 정해진 고정형 상품의 원금 및 이자만 합산한 금액이다. 입출금이 자유로운 자유형 상품의 금액을 합하면 더 불어난다.
앞서 고파이 자금을 운용해온 미국 가상자산 대출업체 제네시스 글로벌 캐피탈은 지난 19일 파산을 신청했다. 제네시스 캐피탈이 파산을 신청하며 미국 법원에 제출한 문서를 보면, 고팍스(스트리미)의 채권 규모는 약 5676만달러(701억원)에 달한다. 이에 고팍스가 고객에게 돌려줘야 할 고파이 자금이 당초 알려진 300억원대에서 훨씬 더 많은 금액일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고파이 관련 협상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이준행 대표 지분의 가격이 400억원대까지 낮아졌다. 고파이에 묶인 고객 자금은 최소 320억원, 최대는 600억원대까지 추정된다. 이 대표 지분에 고파이 금액을 합산하면 인수 가격은 최소 700억원대 후반에서 많게는 1000억~1100억원가량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협상 초기 가격은 1400억원대로 알려졌다. 초기에 비해 인수가가 대폭 낮아진 셈이다. 또 지난해 4월 고팍스는 시리즈B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를 3700억원으로 평가받은 바 있다. 당시에 비하면 현재 기업가치는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셈이다.
고팍스 측은 인수 협상과 관련한 모든 사항은 비밀유지계약(NDA)으로 인해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단, 고팍스는 바이낸스와의 협상을 '글로벌 최대 블록체인 인프라 업체와의 협의'라며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고팍스는 지난 20일 공지를 통해 "고파이 정상화를 포함한 고팍스와 글로벌 최대 블록체인 인프라 업체와의 협의는 마무리 단계에 있으며, 일부 소액주주와의 협의도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며 "현재는 해외 투자자 참여에 따른 행정적 절차 등 수반되는 사항을 집중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